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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원 편지


목사님, 강군이 왔습니다.

힘들 때마다 찾아보라던 주수일 회장과 함께 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중매하셨던 정추자도 같이 왔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태평양을 건너, 날짜도 바뀐 나라 대한민국을 떠난 지 50여 년 만입니다.

저는 지금 주수일 등에 업혀, 올해로 87세, 다리에 힘이 빠져 걷지를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왔습니다.

두상달 말대로 십 년 전에 이미 천국에 가 있을 건강 상태였는데, 하버드대병원에서 7시간 걸려 등뼈 수술 — 등뼈를 통째로 떼어내어 텅스텐(tungsten)으로 다시 꿰맨 수술 — 을 하여 오늘까지 살아 있습니다.

한국 떠난 지 50여 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목사님의 최초 비서로, 어쩌면 최초의 학생간사로 목사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수덕사 일엽 스님이 계실 때 간사 하나가 절로 들어가, 수덕사 밤 산길을 비를 맞으며 만나러 가던 일, 철원의 어느 기도원을 가던 밤길에 목사님을 업고 개울을 건너던 일도 생각납니다.

이제 한국에 와서 보니, 천지가 개벽하면 이런 모습일까, 상전벽해(桑田碧海)가 현실이 되어, 하늘 위에 떠가는 흰 구름만 그대로일 뿐 땅조차 하늘이 되어 모든 것이 변해 있습니다. 목사님이 피를 토하며 외치셨던 “민족복음화”, 그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일등 국가가 되었습니다. 세계 사람들이 ‘저 한국을 보라’고 부러워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살기 편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배를 만드는 조선업, 남북통일에 쓰일 방산업, 가전제품의 삼성·LG, 그리고 디지털 문화의 선두주자 반도체의 왕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 우리 입맛에만 맞는 줄 알았던 식품 문화의 혁명 — 라면 판매 1위, 발효식품의 선두, 건강식품의 혁명. 미국에서 먼저 발명되어 어정쩡하고 맛없던 것도 우리 한국에 오면 맛있게 변하니, 맛을 알고 멋을 아는 민족, 지혜롭고 총명한 우리 민족, 어디를 봐도 사랑스러운 우리 배달의 민족혼. 화장실 문화를 향기 나는 화장실로 바꿔 놓은 나라, 목사님이 꿈꾸셨던 예수 혁명이 이루어진 나라.

그런 나라에 와서 목사님을 뵈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큰 스승이신 목사님을 그리워합니다. 목사님 신발을 받고 너무 커서 헐거워하던 박성민 목사가, 우리의 기대보다 넘치게, 목사님과 우리들의 기대를 뛰어넘어 새 세대의 판을 유감없이 펼치고 있습니다.


▲ 강용원 간사 (전 미주 KCCC 대표) ©뉴스파워

강용원 간사는 고려대 재학 시절 CCC 김준곤 목사를 만나 첫 학생간사 겸 비서로 섬기면서, 1964년 1월 27일 〈CCC 편지〉 창간 편집장을 맡아 주옥같은 김준곤 목사의 설교와 CCC의 생생한 역사를 기록했다.

특히 HCCC 초대 대표를 맡아 김상철 전 서울시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전 국무총리), 임성준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캐나다 대사 역임) 등 고등학생들을 신앙으로 훈련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CBS에서 10년 근무한 뒤 CCC 전임간사로 헌신하여, 미주 CCC 대표를 맡아 한인 대학생 선교 운동을 개척해 많은 인재들을 전도하고 육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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