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구가족상담센터 소장 김영호
2016.04.09. 영남일보 게재
활짝 핀 벚꽃이 짜증스러울 수 있다니 그런 느낌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이라서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울증이 심한 나이든 부인을 뒷자리에 태우고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마침 벚꽃이 만개해서 온통 꽃 세상을 이룬 벚꽃나무 밑을 나풀나풀 떨어지는 꽃잎을 피해 가듯이 조심스레 운전을 하면서 속으로는 “아! 참으로 아름답다!”고 연발로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조용한 차안의 정적을 깨고 뒷좌석의 부인이 “아휴! 벚꽃이 뭐 저렇게 짜증스럽게 피었어!” 하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벚꽃이 짜증스럽다니! 순간 귀를 의심했으나 바로 다음 순간 이 부인이 깊은 우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떠올라 다소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토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만개한 벚꽃의 장관이 짜증스럽다니!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남아 있었다.
나는 벚꽃이 아름다운데, 저 부인은 어떻게 짜증스럽게 느껴지지? 의문이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본 것이 맞나 저 양반이 본 것이 맞나? 누구나 자기가 본 것을 진실로 생각하는데, 누가 맞을까? 두 사람 다 맞을 수가 있다. 그럼, 벚꽃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름다운가? 짜증스러운가? 혹시 벚꽃은 짜증스러운데 아름답게 잘못 느끼고 있는 걸까? 마침 비둘기 한 마리가 무심히 공중을 선회하고 있었다. 비둘기에게 벚꽃이 어떠냐고 물어 본다면 뭐라고 답을 할까? 비둘기는 무심하니까 그저 희고 뿌옇다가 바람 불면 펄렁펄렁 떨어질 뿐이라고 할 것 같다. 성철스님께 여쭈었으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하셨으니까 벚꽃은 벚꽃이라고 하시겠지. 맞다! 벚꽃은 벚꽃일 뿐인데 저마다 아름답네 심지어 짜증스럽네 하고 있구나. 생각은 흘러흘러 벚꽃은 벚꽃일 뿐이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하였다.
그런데, 벚꽃은 벚꽃인데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왔고 짜증스러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냥 벚꽃일 뿐인 것을 나는 아름답게 보았고 이 부인은 짜증스럽게 보았다면 그 느낌의 발원지가 각자의 마음속이라는 점이 확실하다. 나는 내 마음속의 아름다움을 벚꽃에 뿜어 붙혀서 아름답게 보았고 이 부인은 자신 속의 짜증스러움을 벚꽃 에 뿜어 붙혀서 짜증스럽게 본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 자기 마음속을 바깥 세상에 내비추어 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 무학대사께서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고 하셨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보며 산다. 아름다움이 많은 사람은 아름다움을 자주 보고 짜증이 많은 사람은 짜증을 자주 보는 것이다. 벚꽃을 본다기보다는 벚꽃을 빌미로 자기 마음속을 본다고 하겠다.
벚꽃일 뿐인 벚꽃을 자기 나름대로 보는 방식은 미워하는 아이에게도 적용이 된다. 자식 중에 유독 한 아이가 밉다면 그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다. 그런데 부모가 그 아이를 밉게 본다면 벚꽃을 짜증스럽게 보듯이 아이를 밉게 본다고 볼 수 있다. 그 아이가 정말로 미운 아이이라면 그 아이는 한 번도 안 미운 적이 없어야 한다.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미운 아이이여야 한다ㅏ. 엄마도, 형제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미워해야 한다. 그러면 그 아이는 미운 이이가 맞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집에서 부모에게서 미운 털이 박혔겠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귀여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할 지경이고 친구들에게는 “짱!”이고 선생님께는 칭찬도 받는 아이라면 그 아이는 미운 아이가 아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만 미운 아이이다. 마치 벗꽃에 자기 짜증이 부착되듯이 자신의 미움을 아이에게 부착시키고 미워하는 것이다. 자기를 미워하는 모양새이다. 아이만 미운 것이 아니다. 가까이는 남편도 밉고 아내도 미울 수 있다. 이 모두가 자신의 미움을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최선의 좋은 마음을 내보내는 것이 맞다.

